top of page
Kim Eun Ju
다시, 봄 Again, SPRING
동백꽃, 유채꽃, 벚꽃 등이 만개하는 4월, 제주는 봄꽃내음 가득한 꽃섬이 된다.
70년 전 과거의 제주 풍경도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제주 4·3, 그 해에도 어김없이
봄은 돌아왔으나 계절이 주는 온기는 겨우내 얼어붙은 땅을 녹일 뿐, 그 땅을 밟고 선 사람에게는 닿지 못했다.

김택(82세)_너븐숭이 소낭,Pigment print 144x112cm, 2018
당시 북촌초등학교 5학년이었다. 1949년 1월 17일 북촌초등학교 죽음의 경계선에서 벗어나 서쪽으로 선 덕분에 살아났지만 아버지(김유신, 49세)가 너븐숭이 소낭에서 사살되었다.
당시 북촌초등학교 5학년이었다. 1949년 1월 17일 북촌초등학교 죽음의 경계선에서 벗어나 서쪽으로 선 덕분에 살아났지만 아버지(김유신, 49세)가 너븐숭이 소낭에서 사살되었다.

이중흥(72살)_연동 남주봉,Pigment print 144x112cm, 2018
1949년 4월말 산에서 내려오면 살려준다는 말에 아버지(이학수, 36세)는 이중흥(2세)을 업고 누나 이순자(8세)의 손을 잡고 어머니(이영숙, 30세)와 동네 어르신들과 함계 내려왔다. 아버지는 육지 형무소로 보내졌다고 하지만 행방불명이 되었다. 이중흥 행방불명인유족협의회장은 2018년 6월에 고인이 되었다.
1949년 4월말 산에서 내려오면 살려준다는 말에 아버지(이학수, 36세)는 이중흥(2세)을 업고 누나 이순자(8세)의 손을 잡고 어머니(이영숙, 30세)와 동네 어르신들과 함계 내려왔다. 아버지는 육지 형무소로 보내졌다고 하지만 행방불명이 되었다. 이중흥 행방불명인유족협의회장은 2018년 6월에 고인이 되었다.

문미자(86세), 문하자(79세)자매_북촌 당팟,Pigment print 144x112cm, 2018
1949년 1월 17일 아버지(문성현, 55세)가 당팟에서 희생되었고, 1949년 3월 23일 오빠(문인수, 32세)는 무장대와 같이 조천지서 습격에 참여했다가 현장에서 사망했다고 전해 들었다. 작은어머니 식구는 옴팡밭에서 모두 희생되었다. 2018년 11월 14일 문미자님은 고인이 되었다.
1949년 1월 17일 아버지(문성현, 55세)가 당팟에서 희생되었고, 1949년 3월 23일 오빠(문인수, 32세)는 무장대와 같이 조천지서 습격에 참여했다가 현장에서 사망했다고 전해 들었다. 작은어머니 식구는 옴팡밭에서 모두 희생되었다. 2018년 11월 14일 문미자님은 고인이 되었다.

고응칠(72세)_중문동사무소 옆 개울가,Pigment print 144x112cm, 2018
농장을 운영하고 있던 아버지(고광두, 25세)가 중문지서에 며칠 구금되었다가 1948년 12월 2일에 중문 동사무소 옆 개울가에서 총살되었다.
농장을 운영하고 있던 아버지(고광두, 25세)가 중문지서에 며칠 구금되었다가 1948년 12월 2일에 중문 동사무소 옆 개울가에서 총살되었다.

홍춘화(81세)_동광리 사라진 마을 옛 집터,Pigment print 144x112cm, 2018
4·3사건으로 남동생 세 명이 희생당했다. 마을이 불타고 가족과 함께 피난길에 1948년 12월 말 두 살배기 동생(무명)이 제일 먼저 굶어 죽었다. 5살 동생(무명)도 어느 구석진 밭에서 죽었다. 8살 동생(홍문선)은 숨비나리곶에서 죽었다.
4·3사건으로 남동생 세 명이 희생당했다. 마을이 불타고 가족과 함께 피난길에 1948년 12월 말 두 살배기 동생(무명)이 제일 먼저 굶어 죽었다. 5살 동생(무명)도 어느 구석진 밭에서 죽었다. 8살 동생(홍문선)은 숨비나리곶에서 죽었다.

강종화(88세)_장전 윗마을 소길,Pigment print 144x112cm, 2018
1948년 5월 초등학교 6학년 때 친구들과 꿩알을 주우러 보리밭에 함께 갔었다. 일렬로 서서 꿩을 쫏고 있는데 갑자기 총소리가 나면서 다리에 관통상을 입었다. 그때 서북청년들이 완장과 장갑을 크게 끼고 있는 것을 보았다. 지휘간은 경찰이었지만 사복을 입고 있었다. 지휘관이 본인이 학생인 것을 알고 싣고 가 치료하게 해 주었다.
1948년 5월 초등학교 6학년 때 친구들과 꿩알을 주우러 보리밭에 함께 갔었다. 일렬로 서서 꿩을 쫏고 있는데 갑자기 총소리가 나면서 다리에 관통상을 입었다. 그때 서북청년들이 완장과 장갑을 크게 끼고 있는 것을 보았다. 지휘간은 경찰이었지만 사복을 입고 있었다. 지휘관이 본인이 학생인 것을 알고 싣고 가 치료하게 해 주었다.

송숙(95세)_자택 도두1동 1944번지,Pigment print 144x112cm, 2018
도두1동 1944번지에서 남편(김병극, 27세)과 함께 살고 있었는데 남편이 지서로 불려갔다가 돌아오지 못했다. 훗날 목포형무소에 수감 중 김천형무소로 이감되었다가 행방불명되었다고 기록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제사는 남편 생일인 2월 27일 지내고 있다.
도두1동 1944번지에서 남편(김병극, 27세)과 함께 살고 있었는데 남편이 지서로 불려갔다가 돌아오지 못했다. 훗날 목포형무소에 수감 중 김천형무소로 이감되었다가 행방불명되었다고 기록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제사는 남편 생일인 2월 27일 지내고 있다.

양아홍(79세),김명원(85세)_구(舊)현의합장묘,Pigment print 144x112cm, 2018
양아홍(79세)_구(舊)현의합장묘
구(舊)현의합장묘에서 1949년 1월 9일 아버지(양기원, 33세)가, 1월 11일 둘째아버지(양기학, 47세)와 사촌(양을령, 15세)이 총살당했다. 1949년 2월 17일 신흥리 초등학교에 화재가 발생하자 폭도로 몰린 외할머니(오숙일)와 어머니(정수석, 34세), 동생(무명, 3세)이 태흥3리 쪽에서 총살되었다.
김명원(85세)_구(舊)현의합장묘
집 안으로 들어와 부모님을 찾는 경찰의 물음에 모른다고 하자 밖으로 끌려가다 팔에 총을 맞았다. 아버지(김병하, 35세)와 신흥리 외삼촌이 토벌대에 학살되었으나 시신을 찾지 못했다. 1949년 1월 10일 의귀초등학교에 어머니, 동생과 함께 감금되었는데 2연대 군인들에게 어머니(강매전, 37세)가 학살되었다. 이후 3일 동안 품에 안고 다녔던 태어난 지 25일밖에 되지 않은 동생이 젖을 먹지 못해 배고픔에 울다 죽었다.
양아홍(79세)_구(舊)현의합장묘
구(舊)현의합장묘에서 1949년 1월 9일 아버지(양기원, 33세)가, 1월 11일 둘째아버지(양기학, 47세)와 사촌(양을령, 15세)이 총살당했다. 1949년 2월 17일 신흥리 초등학교에 화재가 발생하자 폭도로 몰린 외할머니(오숙일)와 어머니(정수석, 34세), 동생(무명, 3세)이 태흥3리 쪽에서 총살되었다.
김명원(85세)_구(舊)현의합장묘
집 안으로 들어와 부모님을 찾는 경찰의 물음에 모른다고 하자 밖으로 끌려가다 팔에 총을 맞았다. 아버지(김병하, 35세)와 신흥리 외삼촌이 토벌대에 학살되었으나 시신을 찾지 못했다. 1949년 1월 10일 의귀초등학교에 어머니, 동생과 함께 감금되었는데 2연대 군인들에게 어머니(강매전, 37세)가 학살되었다. 이후 3일 동안 품에 안고 다녔던 태어난 지 25일밖에 되지 않은 동생이 젖을 먹지 못해 배고픔에 울다 죽었다.

이사아(96세),이승례(85세)_함덕 모래밭,Pigment print 144x112cm, 2018
이사아(96세)_함덕 초등학교 근처
1949년 1월 17일 친정아버지(이학봉, 61세)와 작은아버지(이학연, 53세)가 함덕 군인 주둔지에서 사살되었고, 남편(이성도, 26세)은 1949년 4월 21일 선흘 근처에서 사망했다.
이승례(85세)_함덕 초등학교 근처
1949년 1월 17일 아버지(이평림, 47세)가 함덕 모래밭 군인 주둔지 근처에서 사살되었다. 할아버지(이태효, 76세)는 1949년 11월 23일 북촌 양계왓에서 총에 맞아 희생되었다.
이사아(96세)_함덕 초등학교 근처
1949년 1월 17일 친정아버지(이학봉, 61세)와 작은아버지(이학연, 53세)가 함덕 군인 주둔지에서 사살되었고, 남편(이성도, 26세)은 1949년 4월 21일 선흘 근처에서 사망했다.
이승례(85세)_함덕 초등학교 근처
1949년 1월 17일 아버지(이평림, 47세)가 함덕 모래밭 군인 주둔지 근처에서 사살되었다. 할아버지(이태효, 76세)는 1949년 11월 23일 북촌 양계왓에서 총에 맞아 희생되었다.

양능자(96세)_자택(제주시 부록길 6),Pigment print 144x112cm, 2018
1948년 12월, 경찰을 피해 숨어있던 남편(김권배, 25세)은 친구들과 함덕 군부대로 같이 갔다. 1949년 1월 1일 산에 남은 무장대를 토벌하러 가기 위해 트럭에 태워졌으나 산으로 가지 않고, 그날 밤 12시 박성내 하천 변에 끌려가 150명이 집단 총살되었다. 4월 말일 쯤 시신을 찾으러 갈 수 있었는데 남편의 시신은 마지막에 입었던 옷과 신고 있던 신발, 치아로 구분할 수 있었다.
1948년 12월, 경찰을 피해 숨어있던 남편(김권배, 25세)은 친구들과 함덕 군부대로 같이 갔다. 1949년 1월 1일 산에 남은 무장대를 토벌하러 가기 위해 트럭에 태워졌으나 산으로 가지 않고, 그날 밤 12시 박성내 하천 변에 끌려가 150명이 집단 총살되었다. 4월 말일 쯤 시신을 찾으러 갈 수 있었는데 남편의 시신은 마지막에 입었던 옷과 신고 있던 신발, 치아로 구분할 수 있었다.

양경숙(96세)_애월 옛 집 당산나무 앞에서,Pigment print 144x112cm, 2018
1948년 12월 친정어머니 집에서 몇몇 사람이 모여 있었는데 양경숙은 회의 주동자로 주엄지서로 연행되었다. 이후 나무에 거꾸로 매달린 채 뭉둥이로 매질을 당했으며 5일 동안 감옥에 갇혀 있었다. 그때의 고문으로 인해 시력을 거의 잃게 되었다. 남동생들(양창희, 20세, 양창범, 15세)도 행방불명되었다.
1948년 12월 친정어머니 집에서 몇몇 사람이 모여 있었는데 양경숙은 회의 주동자로 주엄지서로 연행되었다. 이후 나무에 거꾸로 매달린 채 뭉둥이로 매질을 당했으며 5일 동안 감옥에 갇혀 있었다. 그때의 고문으로 인해 시력을 거의 잃게 되었다. 남동생들(양창희, 20세, 양창범, 15세)도 행방불명되었다.

강형석(77세)_청수리 산6번지(곶자왈),Pigment print 144x112cm, 2018
1949년 2월 16일 형(강정구, 21세)이 청수리 산 6번지(곶자왈)에 땔감 하러 갔다가 손에 낫을 들었다고 이를 수상히 여긴 경찰에게 그 자리에서 바로 총살을 당했다.
1949년 2월 16일 형(강정구, 21세)이 청수리 산 6번지(곶자왈)에 땔감 하러 갔다가 손에 낫을 들었다고 이를 수상히 여긴 경찰에게 그 자리에서 바로 총살을 당했다.

오수송(85세)_하도리(속칭 연두골),Pigment print 144x112cm, 2018
1949년 2월 10일 속칭 연두골에서 40여 명 정도 희생되었는데 아버지(오도원, 53세)와 어머니(고을생, 46세), 형(오장송, 18세)이 이때 같이 총살되었다. 본인은 당시 15세였고 부모님이 3대 독자이니 살려달라고 하여 살아남았다. 누이(오영자, 14세)와 동생(오홍림, 9세)은 집에 두고 왔었는데 연두골에서 같은 날 총살되었다.
1949년 2월 10일 속칭 연두골에서 40여 명 정도 희생되었는데 아버지(오도원, 53세)와 어머니(고을생, 46세), 형(오장송, 18세)이 이때 같이 총살되었다. 본인은 당시 15세였고 부모님이 3대 독자이니 살려달라고 하여 살아남았다. 누이(오영자, 14세)와 동생(오홍림, 9세)은 집에 두고 왔었는데 연두골에서 같은 날 총살되었다.

김정숙(91세)_애월 남길 28,Pigment print 144x112cm, 2018
1950년 7월 남편(박중석, 22세)과 시어머니와 함께 저녁식사를 하던 중 남편이 지서의 부름을 받고 나갔다가 제주경찰서에 구금되었고 이후 행방불명되었다. 당시 본인은 임신 중이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를 낳았다는 이야기만 전해 줄 수 있었다. 남편은 애월중학교 교사였고, 제주신문사 기자로도 활동했었다.
1950년 7월 남편(박중석, 22세)과 시어머니와 함께 저녁식사를 하던 중 남편이 지서의 부름을 받고 나갔다가 제주경찰서에 구금되었고 이후 행방불명되었다. 당시 본인은 임신 중이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를 낳았다는 이야기만 전해 줄 수 있었다. 남편은 애월중학교 교사였고, 제주신문사 기자로도 활동했었다.

이임규(97세)_남원읍 신례2리 바닷가, Pigment print 142x114cm, 2018
1948년 11월 겨울, 친구를 따라나선 남편(정원종, 28세)이 지금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1949년 7월에 태어난 딸은 유복자가 되었다.
1948년 11월 겨울, 친구를 따라나선 남편(정원종, 28세)이 지금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1949년 7월에 태어난 딸은 유복자가 되었다.

김정길(78세)_성산 터진목,Pigment print 142x114cm, 2018
1948년 10월 27일 농사일로 밭에 다녀오던 아버지(김경준, 30세)가 집 근처에서 잠복 중이던 서북청년 4명에게 잡혀가 성산 터진목에서 학살되었다. 할아버지(김창숙, 52세)와 할머니(정기숙, 57세)는 성산포 사촌형 댁에 20일 정도 머무르다가 1949년 2월 1일 함께 터진목에서 희생되었다.
1948년 10월 27일 농사일로 밭에 다녀오던 아버지(김경준, 30세)가 집 근처에서 잠복 중이던 서북청년 4명에게 잡혀가 성산 터진목에서 학살되었다. 할아버지(김창숙, 52세)와 할머니(정기숙, 57세)는 성산포 사촌형 댁에 20일 정도 머무르다가 1949년 2월 1일 함께 터진목에서 희생되었다.

이상하(83세)_회수리부락 옛 집,Pigment print 142x114cm, 2018
형(이기하, 25세)이 산에 가버리는 바람에 할아버지(이원옥, 71세)와 할머니(강주향, 64세)가 1948년 12월 13일날 중문면 대포리 자택 인근에서 총살되었다. 1948년 12월 17일 아버지(이두현, 45세), 어머니(강태사, 42세), 누나(이화선, 16세), 형의 아들(이길팔, 9세), 형의 딸(이춘자, 7세)이 모두 회수리부락 집 마당에서 도피자 가족이라는 이유로 몰살당했으나 본인만 총에 맞지 않고 살아났다. 형은 1949년 비행장에서 행방불명되었다.
형(이기하, 25세)이 산에 가버리는 바람에 할아버지(이원옥, 71세)와 할머니(강주향, 64세)가 1948년 12월 13일날 중문면 대포리 자택 인근에서 총살되었다. 1948년 12월 17일 아버지(이두현, 45세), 어머니(강태사, 42세), 누나(이화선, 16세), 형의 아들(이길팔, 9세), 형의 딸(이춘자, 7세)이 모두 회수리부락 집 마당에서 도피자 가족이라는 이유로 몰살당했으나 본인만 총에 맞지 않고 살아났다. 형은 1949년 비행장에서 행방불명되었다.

오인권(71세)_성산 터진목,Pigment print 142x114cm, 2018
1949년 1월 아버지(오명언, 26세)가 성산포지서 경찰관으로 있다가 사표를 낸 뒤 행방불명이 되었으나 1949년 10월 2일 군사재판을 받아 제주국제공항에서 사형집행이 되었다.
어머니(현정생, 24세)는 아버지가 행방불명되었다는 이유로 1949년 2월 1일 성산포 모래밭에서 총살되었다. 당시 본인은 어머니 품에 안겨 있었는데 양팔과 가슴에 총을 맞았지만 살아났다. 이후 서북활주로 유해 발굴 때 DNA 검사를 통해 아버지의 유해를 찾았다.
1949년 1월 아버지(오명언, 26세)가 성산포지서 경찰관으로 있다가 사표를 낸 뒤 행방불명이 되었으나 1949년 10월 2일 군사재판을 받아 제주국제공항에서 사형집행이 되었다.
어머니(현정생, 24세)는 아버지가 행방불명되었다는 이유로 1949년 2월 1일 성산포 모래밭에서 총살되었다. 당시 본인은 어머니 품에 안겨 있었는데 양팔과 가슴에 총을 맞았지만 살아났다. 이후 서북활주로 유해 발굴 때 DNA 검사를 통해 아버지의 유해를 찾았다.

진영주(79세)_안덕면 대남 상창리 119번지,Pigment print 142x114cm, 2018
1948년 3월, 상천마을 아래 대난도 상간마을 소개령으로 아버지(진태문, 35세)가 산으로 피신하였다. 1948년 3월 31일, 어머니(장인숙, 33세)와 남동생(무명, 15개월)은 아버지가 집에 없다는 이유로 집 마당에서 총살되었다. 이후 아버지도 행방불명되었다.
1948년 3월, 상천마을 아래 대난도 상간마을 소개령으로 아버지(진태문, 35세)가 산으로 피신하였다. 1948년 3월 31일, 어머니(장인숙, 33세)와 남동생(무명, 15개월)은 아버지가 집에 없다는 이유로 집 마당에서 총살되었다. 이후 아버지도 행방불명되었다.

김현숙(94세)_하도마을 옛 집터,Pigment print 142x114cm, 2018
남편(부원정, 25세)이 1948년 10월 14일 인구조사를 위해 나오라는 말을 듣고 갔다가 1948년 11월 21일 생세기 모살에서 총살되었다. 이날 하도마을에서 총 6명이 함께 죽음을 당했다.
남편(부원정, 25세)이 1948년 10월 14일 인구조사를 위해 나오라는 말을 듣고 갔다가 1948년 11월 21일 생세기 모살에서 총살되었다. 이날 하도마을에서 총 6명이 함께 죽음을 당했다.

고복희(98세)_해안리 조리물부근,Pigment print 142x114cm, 2018
남편(김두석, 27세)은 저녁식사로 죽을 먹었다. 식사 후 동네 사람들 다섯 명 정도가 와서 데리고 나갔는데 그게 마지막이었다. 1948년 11월 28일 해안리 속칭 조리물 부근에서 총살당했으며 시신은 수습하지 못했다.
남편(김두석, 27세)은 저녁식사로 죽을 먹었다. 식사 후 동네 사람들 다섯 명 정도가 와서 데리고 나갔는데 그게 마지막이었다. 1948년 11월 28일 해안리 속칭 조리물 부근에서 총살당했으며 시신은 수습하지 못했다.
bottom of page